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킴 올라주원 (문단 편집) == 여담 == * 정규 시즌에도 대단한 센터였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더 파워업해서 괴수가 되는 남자였으며, 4대 센터 중에서 가장 먼저 우승반지를 끼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유잉, 로빈슨, 오닐과의 맞대결에서 모두 완승하면서 얻은 반지이다[* 1994 파이널에서 유잉을, 1995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로빈슨을, 1995 파이널에서 오닐을 상대로 전부 승리했다. 특히 로빈슨과의 맞대결에선 평균 35.3득점 12.5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말도 안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올라주원 하면 생각나는 로빈슨을 상대로 한 드림 셰이크 명장면도 이 시리즈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4대 센터 중 샤킬 오닐이 우승 횟수와 누적 스탯이 가장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이때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한 임팩트 때문에 4대 센터 중 올라주원이 가장 뛰어나다고 여기는 팬들도 있다. * 1995 파이널, 휴스턴이 올랜도를 4대0으로 셧아웃시키고 우승할 당시에는 4차전 경기 후반부에는 아예 하이포스트까지 나와 3점슛까지 때려박고 오닐을 데꿀멍시키기도 할 정도로 기량 차이가 있었다.[* 물론 1994-95 시즌 당시 올라주원은 최전성기였고 오닐은 아직 최전성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95 파이널에서 하킴은 3점슛을 한번 시도해 한번 성공했는데, 하킴은 이처럼 상대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의도로 기습적인 3점슛을 종종 넣곤 했다. 당시에는 3점을 공격옵션으로 활용하는 빅맨이 거의 없었던데다가 하킴 역시 로우포스트 공격 위주로 득점했기 때문에 기습 3점을 쏘면 와이드오픈 상태로 쏠 수 있었고, 본인의 클러치 능력과 슛능력 역시 뛰어난지라 매우 높은 확률로 성공시키곤 했다. 실제로 94년 파이널에서도 한번 시도해 한번 성공했는데, 패트릭 유잉이 하킴보다 명확히 잘한 유일한 경기인 5차전 당시 유잉이 샷클락에 쫓겨 던진 3점 터프샷이 극적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하킴은 얼마 후 응수하듯 3점슛을 노려서 성공시켰다. 94년 올스타 전 당시에도 오닐이 3점을 장난으로 던져 에어볼이 나자 3점슛을 정확히 꽂아넣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파일:attachment/하킴 올라주원/dreamshake.gif]] 피해자는 [[데이비드 로빈슨]]. [[파일:glhy.gif]] 피해자는 [[패트릭 유잉]]. [[파일:DQzF.gif]] 피해자는 [[샤킬 오닐]]. * 하킴은 비교적 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더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한 본인의 노력과 의지 덕분에 탑의 위치로 오를 수 있었다. 본인이 농구를 늦게 시작해서 동시대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농구에 대해 유연한 사고를 보유할 수 있었고 거기에 역대급 기술과 실력을 보유했다는 자부심이 합쳐져 2010년대 중반 이후 리그를 강타하고 있는 '스몰볼' 트렌드에 대해 [[https://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160770&sca=&sfl=wr_subject&stx=%ED%95%98%ED%82%B4&sop=and&scrap_mode=&gi_mode=&gi_team_home=&gi_team_away=|높이 평가하는 편이다.]][* 요약하자면 본인이 현역일 때는 빅맨은 당연히 포스트에 머무르는게 당연했지만 자신은 가드처럼 플레이하기를 원했는데, 지금은 많은 빅맨들이 포스트에서 벗어나 플레이 하고 있다며 이것은 빅맨의 역할이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빅맨에게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자신은 [[라마커스 알드리지]]나 [[드레이먼드 그린]]같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이 즐겁고, 그들과 상대하는 상상을 하면서 앞으로도 지켜보겠다고 한다.] * 슈퍼스타였지만, 의외로 농구화는 저가형을 신었다고 한다. 이유는 (내가 그걸 신으면 아이들도 그걸 따라 신으려고 할텐데) 가난한 워킹맘이 120달러나 되는 나이키나 리복 농구화를 자식 셋에게 어떻게 사주나? 그래서 애들이 신발을 훔치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까지 나는 것.[* 영어 위키에 실려있는 원문은 다음과 같다. How can a poor working mother with three boys buy Nikes or Reeboks that cost $120?...She can't. So kids steal these shoes from stores and from other kids. Sometimes they kill for them."] 이라는 본인의 생각. 정말이지 훈훈한 인간미가 느껴진다. 거기에 35달러짜리 저가형 농구화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도 허락했다고 한다. 그가 착용했던 브랜드는 LA기어라는 에어로빅용 신발을 주력으로 하는 중저가 브랜드였다. 허나 유명한 이들이 써주면 브랜드밸류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당시 미국 국내에서는 전용매장도 없어 구하기도 힘들고 비싼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그의 의도와는 완벽하게 역효과가 났다. * 미국 국적 취득 후 [[드림팀]] 멤버로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했다. 나이지리아 팀을 떠난 셈이지만 나이지리아 여론은 올라주원의 국적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되려 나이지리아의 이름을 알렸다고 환영하는 분위기. 자원부국임에도 어려운 경제상황과 종교적 갈등으로 내전이 자주 벌어지는 나이지리아는 비슷한 문제를 가진 앙골라와 같이 아프리카의 농구강국이긴 하지만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 나와봐야 1라운드 통과만 해도 잘하는 수준이니 올라주원이 나이지리아에 남아있다고 해봐야 드림팀 이상의 성적은 내기 어렵다는 점도 한몫 했을듯 하다. 참고로 대회 결과는 우승. 특히 결승전에서는 당시 세계적인 농구강호로 평가받던 유고슬라비아를 30점차로 깨버리고 우승했는데, 유고 주전이던 디박은 30점차로 진 것도 기적이라며 완패를 인정했다.[* 기적이 맞다. 당시 유고팀의 최고 선수였던 [[블라디 디박]]도 올스타급 바로 아래의 좋은 선수였지만 당시 드림팀은 전원 올스타급~MVP급이었으며 (실제로 1994-95 시즌 MVP 데이비드 로빈슨과 1996-97 시즌 MVP 칼 말론이 있었다.) 특히 1993-94, 1994-95 시즌 2년 연속으로 MVP 투표 5위권에 전원 이름을 올린 전설의 4대 센터중 3명이 있었다(게다가 유일하게 빠진 유잉은 가장 나이가 많고 기량도 많이 떨어진 상황). 유고 입장에선 로빈슨, 오닐, 올라주원은 디박이 절대 1대1로 막을 상대가 아니고 집중마크해야 하는 상대인데, 코트 위의 전원이 절대열세라 그럴 수도 없는 환장할 상황.] * 현역, 은퇴선수들 간에 센터로서의 능력도 자주 회자되지만 개그 소재로 쓰이곤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샤킬 오닐의 경험담처럼 어눌했던 그의 발음은 선수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던 듯. 은퇴한 NBA 선수들이 패널로 나오는 'Open Court'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휴스턴 시절 팀 동료였던 고정패널 케니 스미스 덕에 자주 회자되며 개그성 일화에 단골로 언급된다. 공통적으로는 정말 코트 위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 역시 같은 팀동료 [[로버트 오리]]의 경우에는 올라주원의 승부욕이 그를 챔피언으로 만들었다고 평한다. 특히 두고두고 회자될 1995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데이비드 로빈슨]]을 무력화시킨 그의 모습은 사실 데이비드 로빈슨의 MVP 시상식을 경기에 앞서 한 것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사실 [[데이비드 로빈슨]]은 1990년대 최고의 센터 중 하나로 꼽히는 대선수이며 올라주원 상대로도 절대 약하지 않았다. 올라주원을 털어먹은 경기도 제법 있을 정도. 하지만 이 시리즈를 비롯해 몇 번 임팩트 있게 털리는 바람에 올라주원의 하이라이트 동영상이 나올 때마다 올라주원 본인 외에는 최다출연자 자리를 도맡는 신세가 되었다. 선수 평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중요 무대에서의 활약인데 여기서 판정패를 당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평범한 센터 상대로는 올라주원이 딱히 힘들일 필요도 없었겠지만 역대급 수비수인 로빈슨을 뚫기 위해서 작정하고 온갖 화려한 기술을 동원한 것이니 이건 올라주원이 이렇게까지 하게 만든 로빈슨의 위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데이비드 로빈슨이 이끄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당시 리그 최고 승률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었고, 정규 시즌에서 휴스턴과의 대결 역시 시리즈 스윕을 거두었기 때문에 로빈슨이 MVP를 받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하필 올라주원 앞에서 시상식을 해버리는 바람에 자존심 강한 그의 승부욕을 제대로 자극해버린 셈.] 포스트무브와 풋워크가 원체 좋은 선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시리즈에서는 동료들도 보지 못했던 플레이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n_-9Z2LF4fI|*Grantland 인터뷰 중]] 여담으로 로버트 오리는 자신과 함께한 선수중에서 [[샤킬 오닐]]이나 [[팀 던컨]]보다도 올라주원을 가장 위대한 선수로 여기고 있다. * 여담으로 [[데이비드 스턴]] 총재가 NBA 총재로 취임하고 나서 가장 처음으로 지명한 선수이다. 스턴 총재가 그의 마지막 지명이었던 2013년도 1라운드 30순위 선수를 호명한 이후, 스턴 총재와 만나서 포옹을 나누었다. [[http://www.youtube.com/watch?v=3XDJECfLy0o|*1분55초부터]] * 독실한 [[무슬림]]이다 보니 그와 관련된 해프닝이 몇 개 있었는데, [[테러와의 전쟁]] 이후로 이슬람 테러조직을 후원했다는 의혹을 받아 해명에 진땀을 빼야 했고 [[https://www.mk.co.kr/news/home/view/2005/02/57844/|#]], [[라마단]]을 철저하게 지켜온 것으로도 유명하며, [[도널드 트럼프]] 재임 당시 반이민 행정명령에 분노를 표출한 바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203064700007|#]] * 2022-23 시즌부터 올해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트로피 이름이 하킴 올라주원 트로피로 확정되었다. [[NBA]]에서 역대 최고의 수비수로 공인한 것이다. * TNT에서 활약하는 전 팀 동료인 [[케니 스미스]] 덕분에 의도치 않게(?) 미디어에 꾸준히 노출되는 한 명이다. 그덕에 우승반지를 두개를 얻은지라 아무래도 케니는 틈만나면 하킴에 대해서 언급하고 찬양한다. 또한 하킴 본인의 조용한 성격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킴은 머리도 굉장히 비상해서 비니지스면으로도 꽤나 성공을 거두어 휴스턴에 그의 빌딩이 여러채가 되며 부동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인품 역시 훌륭해 팀 동료로써만이 아닌 개인으로서도 상당히 존경한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